1987년 12월9일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인천부천지역본부
지방공사인천병원노동조합 창립

초대위원장 - 박창한
2대위원장 - 한상태
3대~4대위원장 - 박창한
4대~5대위원장 - 한상태


 

1998년 2월27일
기업별 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전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인천부천지역본부
지방공사인천의료원지부 창립

초대지부장 - 한상태
2대지부장 - 원종인
3대지부장 - 원종인
4대지부장 - 안재형(現)


 



1995년 9월 지방공사인천의료원 민간위탁운영 결사저지투쟁

 

인천시는 지방공사인천의료원을 연세대세브란스 병원에  민간위탁운영 할 계획을 언급하였고 노동조합에서는 결사 저지하는 투쟁에 돌입하였다.
인천시의 위탁운영방침은 인천의료원 전 직원의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결정과정 자체가 밀실행정의 의혹이 있었고 지방공사 인천의료원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방침이었다. 끈질긴 3개월여의 투쟁으로 위탁운영방침은 철회되었다.

 

 

1996년 12월 노동법개정 날치기 통과 철회를 위한 총파업투쟁

 

정부는 96년 겨울 노동법개정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12월26일 새벽 날치기 통과가 이루어지면서 민주노총이 '무기한 총파업 돌입 긴급 투쟁지침'을 발표하고, 다음날인 12월27일 민주노총의 172개 노조 21만2천명이 파업에 돌입하였으며 인천의료원노동조합도 유래 없는 4시간 시한부 총파업에 돌입하게된다.

 

 

1999년 5월 체력단련비 삭감, 성과급도입 저지 투쟁

 

인천의료원이 송림동으로 확장하여 신축이전 한후 몇 년 동안 신규채용 없었다. 더구나 98년도에는 임금동결이 되어 근무조건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원은 정부의 방침이라며 체력단력비 삭감과 성과급 도입을 시도하였다.
2주가 넘는 기간동안 전 조합원은 흐트러짐 없는 단결된 모습으로 투쟁에 임했고 마침내 총파업 예정시간 1시간을 앞두고 의료원의 ‘체력단련비 삭감, 성과급도입 철회방침’을 이끌어 내며 투쟁을 승리로 마감하였다.

 

 

 

 

1999년 12월 30일 07:00시 총파업투쟁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직제를 바로잡기 위한 첫 시작으로 자동(근속)승진제를 도입하려는 노동조합과 이를 반대하는 병원측과의 대립이 끝을 보이지 않게 되자 12월30일 07:00시를 기해 총파업투쟁을 결의한 것이다. 하루동안의 가열찬 총파업 투쟁에 이어 12월31일 시청앞 총파업집회를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투쟁을 이어가던 중 의료원은 자동(근속)승진제 도입을 받아들여 역사적인 총파업 투쟁을 승리로 마감하였다. 전국의료원 단체협약 상 최초의 민주적인 자동(근속)승진제 도입의 시작이었다.

 

 

2001년 12월 ~ 2002년 2월 인천시의 부당인사(낙하산인사) 철회를 위한 투쟁

 

인천시는 연말연시를 이용해 인천의료원에 부당인사(일명 낙하산인사)로 3급팀장을 내려보냈다. 그 당시 시 관계자와 인맥이 있는 사람들을 지방공사 각 기관에 낙하산처럼 내려보내던 일은 이미 관례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인천시의 원칙 없고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이에 우리는 제대로된 인사위원회를 거쳐 임용할 것을 요구하며 출근투쟁, 결의대회, 서명전, 인천시 규탄집회, 1인 시위, 시의회 참관투쟁등을 전개하였다.

 

 

2002년 12월~2003년 3월 인천의료원 운영정상화를 위한 투쟁

 

인천의료원은 260만 인천시민의 공공의료기관이다. 인천의료원이 지역 내 유일한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갖는 의미는 시민들이 언제나 편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병원이어야 하는 것이다.
의료원경영을 기업의 경영처럼 수익성 중심에서 사고하고 환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운영을 바로잡고자 노동조합은 4개월간의 투쟁을 하게 된다. 조합원 간담회, 전조합원 서명전, 결의대회,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투쟁하였고 그 결과 지역공공의료에 대한 재인식, 장례식장 직영운영, 개방병원 철회 등을 숭리로 이끌어 냈다.